작성일
2021.08.10
수정일
2021.08.10
작성자
나은지
조회수
200

[국제신문] 파푸아뉴기니 원주민의 ‘27’ ... 광메카트로닉스공학과 김광석 교수

 

 

 

 


아이는 다가올 날을 손꼽아 기다리거나 나이만큼 손가락을 펼쳐 수를 익힌다. 처음 마주하는 수는 대부분 다섯 손가락으로 충분하나 차츰 열 손가락이 필요한 수도 경험하게 된다. 이 무렵 아이에게 두 손은 분리된 세상이고 열 손가락을 넘어선 수는 감당하기 힘든 우주 밖이다. 그러므로 다섯 밤을 자고 찾아온 여섯 살 생일날, 친구와 가족에게서 받은 열 개가 넘는 선물은 가늠할 수 없는 행복이다. 십진법은 그렇게 열 개의 손가락으로부터 생겨났다.

1부터 10까지를 표현하는 다양한 기호가 등장했고 마지막 10은 새로운 하나가 되었다. 만약 1부터 9까지를 줄기(∫)의 개수로 나타내고 10을 꽃 한 송이()로 표현한다면 20은 두 송이의 꽃()이 필요하고 99의 표기는 9개의 과 9개의 ∫을 사용하는 번거로운 작업이 된다. 결국 백, 천, 만 같은 큰 수는 달(), 태양(), 별(★) 같은 다른 모양의 기호를 필요로 한다. 하지만 모양이 다른 기호들 사이의 개연성은 미흡하다. 가령, 별(★)이 태양()보다 멀리 있어서 큰 수라 생각할 수 있지만 눈부심 정도로 치자면 태양이 우세하다.

반면 ‘없음’의 상태를 표기하는 것과 ‘자릿수’에 대한 개념을 사용하면 큰 수도 일관성 있는 방식으로 표기할 수 있다. 너무도 익숙한 인도-아라비아 방식의 표기 ‘10’을 보자. ‘9’는 한 개의 자릿수를 차지하지만 ‘10’은 머물던 첫 번째 자리를 비우고 다음 자리의 새로운 하나로 변신한다. 결과적으로 (100), (1000), ★(10000)과 같이 이질적인 상형 기호들의 큰 수를 ‘없음’의 0과 ‘있음’의 1로 일관성 있게 아우를 수 있다.

대화하는 동안 손가락이 쉽게 눈에 띄기는 하지만 발가락 수를 합쳐도 열 개다. 맨발이 일상인 원시 사회에서는 손가락과 발가락 수를 모두 합친 20도 지극히 자연스러운 수였을 것이다. 프랑스어는 80을 4×20라고 표현한다. 따라서 89는 4×20+9이고 99는 4×20+19다. 이렇게 20을 기본 단위로 수를 세는 방식은 다양한 고대 유럽어와 아프리카 아시아 북미 중남미 원주민의 언어 속에서도 발견된다. 순우리말에는 열(10¹), 온(10²), 즈믄(10³), 골(10⁴)이라는 단어가 존재하지만 마야인들은 20진법의 자릿수에 해당하는 kal(20¹), bak(20²), pic(20³), calab(20⁴)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북미 인디언 중에는 인간을 20으로 보는 부족도 있다. 10진법의 수가 양손이 만들어 낸 우주라면 20진법의 수는 손발이 만들어 낸 우주인 셈이다.

반면 파푸아뉴기니 원주민들은 27이라는 차별화된 기준을 사용한다. 왼손 새끼손가락부터 엄지까지 차례대로 1부터 5까지를 대응시킨 다음 왼쪽 손목(6), 왼쪽 아래팔뚝(7), 왼쪽 팔꿈치(8), 왼쪽 위팔뚝(9)을 지나 왼쪽 어깨(10)에 도달한다. 이후 왼쪽 목(11), 왼쪽 귀(12), 왼쪽 눈(13)을 지나 신체의 중심인 코(14)를 기점으로 각각의 왼쪽 부위의 오른쪽 대칭 지점을 따라가며 27의 오른손 새끼손가락까지 도달한다. 이렇게 몸의 다양한 부위를 만져 표현하는 그들에게 수는 현대인들과는 전혀 다른 이미지를 준다. 예를 들어 “오늘 물고기 몇 마리 잡았느냐”는 질문에 왼쪽 귀를 만지며 12라는 수를 알려줄 수도 있지만 “왼쪽 귀만큼 많은 물고기”라는 독특한 비유도 가능하게 한다. 수비주의적 문명인들에게 12개월로 구성된 1년이라는 시간은 12개의 음이 만든 12개의 조(key)처럼 12개의 별자리와 12종류의 동물을 거쳐 회귀하는 반면 파푸아뉴기니 원주민에게 삶은 27을 기준으로 순환한다. 이를테면 세월이 몸을 타고 한 번 순환하면 청춘(27)이 지나가고 두 번의 회귀(54)로 노년이 다가온다.

아마도 문어나 닭이 지배하는 외계행성에서는 8진법을 사용하고 고양이 왕국에서는 4진법이나 18진법을 사용할 가능성이 유력하다. 전류의 on/off가 신호인 전자기계는 2진법을 사용하고 컴퓨터는 16진법의 수로 정보를 처리한다. 세상의 모든 사건을 수로 정보화하는 첨단 시대에 걸맞게 신체 부위를 이용한 자신만의 N진법으로 지난 시간을 새롭게 정돈해 보면 어떨까?

부산대 교수·광메카트로닉스공학과‘감성물리’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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