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2021.07.15
수정일
2021.07.15
작성자
나노
조회수
350

[대학지성] 상징과 은유, 감성적인 시와 그림으로 다가가는 물리 이야기_김광석 교수님

■ 저자가 말하다_ 『시와 그림으로 읽는 감성물리』 (김광석 지음, 부산대학교출판문화원, 517쪽, 2021.07)


물리학은 수학이라는 언어로 표현된다. 낯선 기호를 사용하는 수학적 표현에 익숙하지 않은 이들에게 수식으로 기술된 물리학 전공 책은 읽을 수 없는 고대 문자와 별반 다를 바가 없다. 마치 라틴어를 모르는 자는 읽을 수 없었던 중세의 성경책처럼 물리학 서적은 수학이라는 언어적 장벽을 지니고 있는 셈이다. 좀 뜬금없는 질문이지만 만약 현재 인류에게 재앙이 닥쳐 디지털 문명과 나노기술이 모두 사라진다면 지금까지 이룩해놓은 과학 지식과 유물을 발견할 미래 인류는 어떤 고고학적 경험을 하게 될까? 그들은 과연 종이가 아닌 디지털 문헌에 기록된 자료들을 복원해 지금의 인류가 이룩한 과학기술을 되살릴 수 있을까? 디지털 자료 복원이 어렵다면 그나마 종이책에 남겨진 수학과 물리학의 낯선 기호들의 의미를 해독해 낼 수 있을까? 아마도 미래의 후손들에게 그 작업은 지금의 그 어떤 고고학적 미스터리보다 더 어려운 작업이 될 것 같다. 이렇게 미래 인류가 일종의 지적 단절 상황과 마주할 운명이라면 지금의 우리는 그들에게 구체적이고 방대한 내용을 담은 교과서보다 스스로 답을 찾아갈 수 있는 영감의 씨앗을 알려주는 것이 더 효율적이지 않을까?

고대의 현자들은 그들의 지혜를 쉬운 우화나 비유의 형식으로 남겼다. 나라와 문화가 달라도 대체로 신화나 종교적 우화는 쉽게 공감할 수 있는 방식으로 그 내용을 풀어내고 있다. 그들이 후대 자손들에게 전달하고자 했던 내용은 많고도 어려운 것이었겠지만 세대를 거쳐 전달되는 그 이야기는 겉으로 보기에는 일단 친숙해 보인다. 하지만 고전이 지닌 함축성은 동결 건조된 미역 같아서 물의 온도가 올라갈수록 항상 겉보기 이상의 분량으로 부풀어진다. 이를테면 상징과 비유로 압축된 천 년 전 신화나 우화 속 통찰의 덩어리는 사유의 살과 상상력의 피가 더해질수록 점점 부풀어져 하나의 생명체처럼 되살아날 수 있다.

합리성과 객관성으로 대표되는 과학은 분명 신화나 종교적 지혜와 결이 다른 지식이다. 과학 지식은 내용 자체보다 물질적 증거와 수학을 사용한 정량적 분석 그리고 그 분석 자료를 기반으로 하는 합리적인 추론과 사유를 배워 나갈 수 있다. 나아가 이런 과학적 비판 능력은 비과학적 선동과 비합리적 맹신을 걸러낼 수 있는 안목을 만들어 준다. 하지만 초보자들에게 과학 지식은 첫 만남에서 상식이나 감성적 측면에서 공감하기 어려운 장벽으로 다가온다. 특히 물리학이라는 신비의 섬 주변은 수학이라는 낯선 언어의 장벽들로 둘러싸여 있어서 당최 이해할 수 없는 이질적인 대상으로 취급되거나 이해하기 어렵다는 사실이 오히려 물리학을 과도한 경외의 대상으로 만들어버리기도 한다. 저자는 이런 물리 지식에 대한 이질감을 감성적 방법으로 완화시켜 보려 한다. 이를테면 유년 시절 읽었던 동화 속 이야기들이 어른이 되어갈수록 더욱 그 의미와 깊이가 새로워지는 것처럼, 물리 이론의 원형이 되는 영감을 상징과 은유로 응집된 양분처럼 시와 그림에 녹여 넣으려 했다.

이 책은 크게 수학, 고전물리, 현대물리로 구성되어 있다. Part-I <낯선 언어>에서는 ‘수포자’라는 단어로 대표되는 우리 사회가 지닌 수학에 대한 거부감을 다루면서 수학은 제한된 시간 안에 주어진 문제들을 풀어야 하는 조급함과 점수 스트레스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시적이고 회화적인 속성을 지닌 하나의 낯선 언어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Part-II <고전물리>에서는 입자의 힘과 운동, 소리와 빛의 파동, 전기/자기 현상을 다룬다. 상식 차원에서 어느 정도 익숙한 물리 현상들을 다루는 고전물리는 가급적 물리 이론에 대한 설명보다 물리적 현상에 문학적 감성을 투사하고 있다. 이런 접근은 물리학 지식에 대한 기존 방식의 설명이 지닌 딱딱함을 조금 부드럽게 만들 수도 있는 교육적 효과와 함께 문학이나 예술의 관점에서 물리 이론을 새로운 콘텐츠로 활용하는 영감을 줄 수도 있을 것 같다. Part-III <현대물리>에서 다루는 상대성이론, 통계역학, 양자물리는 비전공자들에게 낯설고 어려운 개념과 내용 설명이 상대적으로 많아 글의 호흡이 길고 난이도가 있다. 하지만 인간이 감지하기 어렵거나 일상의 상식과 상충하는 현대물리의 내용들은 사실상 현대철학자나 예술가들의 고민과도 연결된다.

다가올 시대에는 과학기술과 인문/예술의 경계에서 다양한 연결망이 맺어지거나 새로운 개체화가 진행될 것이다. 아마도 물리학은 그 중심부에 위치할 가능성이 크다. 그러므로 물리학은 선택적 전공지식이 아니라 교양 지식이 되어야 한다. 쉽지 않은 동화책이 되겠지만 이 책 속의 시와 그림이 제공하는 다양한 은유와 상징적 이미지들을 통해 어렵고 딱딱해 보였던 물리학에 조금 가까이 다가설 수 있기를 희망한다.


김광석 부산대·물리학

출처 : 대학지성 In&Out(http://www.unipres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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