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켜보면 다양한 공놀이를 하면서 나이를 먹은 것 같다. 초등학생 때는 축구와 야구를, 중학생 때는 배드민턴과 탁구를 즐겨하다 키가 훌쩍 자란 고등학생 때는 농구나 배구도 했다. 그러다 대학에 들어간 후엔 당구와 테니스를 배웠고 중년 나이부터는 가끔 골프도 한다. 평생 다양한 공을 가지고 놀면서 나는 어떤 삶의 지혜를 배웠을까? 오랜 세월 공놀이의 경험이 쌓여 지금의 구기 스포츠가 만들어졌다면 그 속에도 인간 고유의 본능과 욕망이 숨겨져 있지는 않을까?
구기 스포츠는 종목에 따라 각기 다른 풍경을 보여주지만 서로 비슷한 측면을 지닌 종목도 있다. 일단 축구 야구 배드민턴 탁구 농구 배구 테니스 골프 공들 모두 중력에 반해 허공 속으로 날아올라 궤적을 남긴다. 흔히 비스듬히 던진 공의 궤적을 포물선으로 알고 있지만 공기 저항 탓에 실제 모습은 포물선과 다르다. 현실의 공은 처음엔 비탈진 직선에 가깝게 곧장 날아오르다 속력이 점차 느려지며 봉우리 같은 곡선의 모습을 드러낸다. 최고 높이에 도달한 후에는 생각보다 가파른 모습으로 떨어진다. 포물선 궤적이 최고점을 기준으로 상승과 하강 곡선이 대칭적인 모습인 것에 비해 현실의 공 궤적은 곡선 느낌을 지닌 비대칭 삼각형에 더 가깝다. 똑같은 초기 속력으로도 공이 가장 먼 곳에 도달할 수 있는 ‘최적각’ 역시 포물선 모형은 45°로 예측하지만, 실제는 그 값보다 작아야 한다. 홈런을 치려면 38°, 골프 비거리를 늘리려면 36°가 최적이다.
공기 저항은 공의 크기에 따라서도 달라지고, 공의 속력과 공기 점성의 비율에 따라서도 급변할 수 있어서 현실의 공 궤적 계산은 결코 쉬운 문제가 아니지만 최근 프랑스 물리학자들은 공기 저항 효과를 고려한 후 다양한 구기 스포츠의 ‘최장거리’를 계산했다. 종목별 공의 최대 초기 속력은 기네스북에 등재된 기록을 활용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구기 종목별 경기장의 크기가 공의 ‘최장거리’와 유사하다는 것을 알아냈다. 그러니까 경기장의 크기는 인간의 힘으로 한 번에 공을 보낼 수 있는 가장 먼 거리를 기반으로 정해진 셈이다. 즉, 농구 축구 야구 골프 순으로 공이 가장 멀리 갈 수 있는 거리가 증가하면서 경기장은 커진다.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면 축구 농구 골프의 경우에는 공의 ‘최장거리’에 비해 경기장이 조금 더 크다. 그래서 축구와 농구는 패스가 필요하고 골프는 홀 근처에서 섬세한 접근이 필요하다.
반면, 테니스 배구 탁구는 공의 ‘최장거리’에 비해 경기장의 크기가 작다. 그래서 장애물 같은 네트가 필요하며 공이 경기장 밖으로 나가지 않게 하기 위한 ‘정밀성’ 높은 제어가 요구된다. 또한 공이 ‘최장거리’를 날아가는 시간이 인간의 몸이 반응하는 평균 시간보다 짧아져 긴박한 상황에 대한 ‘반응성’도 좋아야 한다. 따라서 테니스 배구 탁구는 ‘정밀성’과 ‘반응성’ 모두를 필요로 한다. 독특하게도 배드민턴은 경기장 크기가 공의 ‘최장거리’와 거의 비슷해서 ‘반응성’이 더욱 중요한 요소가 되며 상대적으로 공의 속력이 느린 당구는 ‘정밀성’만을 요구한다.
상대와 상호작용을 하며 목표를 향한다는 측면에서 구기 스포츠는 어딘가 협상이나 연애와도 닮은 점이 있다. ‘썸을 타는’ 단계에선 배드민턴 같은 즉각적 ‘반응성’이 중요하며, 주도권 선점을 위한 밀당 단계에선 네트를 넘어온 테니스 배구 탁구 공들을 대하듯 빈틈을 파고든 위기 상황에 대한 민첩한 ‘반응성’과 ‘정밀성’ 높은 묘안이 모두 필요하다. 만약 극도로 예민해진 상황이라면 당구 같은 ‘정밀성’에도 주력해야 한다. 최종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선 홈런처럼 한 번에 상대의 마음을 얻을 수 있는 최적 조건을 생각해야 하고, 간혹 축구나 농구처럼 친구의 도움도 필요하다. 닿을 수 없을 만큼 먼 곳에 있는 골프 홀 같은 상대에게는 우선은 드라이브샷처럼 과감하게 다가서야 하지만 그린 영역에 들어서면 아주 조심스러워야 한다. 미세하게 기울어진 지면과 매 순간 변하는 바람조차 간과해서는 안 된다. 어쩌면 지난 세월 공의 경험이 알려준 것들은 삶의 욕망과 열정이 현실과 마주하는 방법에 대한 지혜가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