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6년 월드컵 열기는 무더위가 시작하기도 전에 식어 버렸다. 체코전 첫 승리 후 다양한 가능성과 경우의 수에 들뜬 순간도 있었지만, 세계적 수준의 선수들을 역대급으로 많이 보유하고도 무기력해 보이기만 했던 그 후의 한국팀 경기들은 한두 명의 뛰어난 역량보다 팀의 조직력과 전술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했다. 그렇다면 축구라는 단체 경기에서 팀의 우열을 결정짓는 핵심 원리는 무엇일까?
골키퍼를 제외한 10명을 3-4-3, 3-4-2-1 방식으로 배치한 모습은 고체 속 결정을 떠올리게 한다. 헤딩 같은 수직 운동도 있지만 지상의 수평 운동이 주를 이루는 축구는 2차원 결정에 가깝다. 이를테면, 축구는 A팀 원자 11개와 B팀 원자 11개가 독특한 패턴을 만든 2차원 물질인 셈이다. 또한, 축구공이 여러 선수를 거쳐 골대에 도달하는 모습은 쇠공이 기울어진 판 위에 놓인 여러 장애물과 부딪히며 굴러 내려오는 갈톤 보드(Galton board)와도 닮았다. 쇠공이 최종적으로 도달하는 다양한 위치는 확률적으로 대칭적 산 모양의 이항분포를 보이지만 특정 위치에 떨어진 쇠공의 수만 포집해 보면 평균을 중심으로 비대칭적 모습을 지닌 포아송(Poisson) 분포를 보인다. 그런데 팀의 골대로 들어간 공의 수 역시 포아송 분포를 보인다.
만약, 입자적 측면의 빛 알의 수가 포아송 분포를 보인다면 뭉침의 성향이 없는 무작위성을 내포하지만, 파동적 관점에서는 잘 조율된 음 같은 결맞음성을 의미한다. 축구 선수와 부딪혀 골대까지 도착하는 축구공이라는 물질 입자에도 양자적 파동성이 작동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팀 선수 간 삼각 패스의 연결망을 통해 상대 수비수들의 방어벽을 넘어서는 모습과 유사하게 고체 속 원자들은 전자를 공유해 결합의 연결망을 구축하고 주변을 둘러싼 원자 배열의 에너지 장벽을 넘어선다. 그리고 양자역학은 축구공 같은 고체 속 전자의 모습을 안개와 구름을 닮은 확률적 파동으로 묘사한다. 그렇다면 다각형 모양의 결정 단위 같은 선수들의 정렬과 그 구조의 뼈대 같은 패스 연결망을 분석해 공의 선점과 유효 공격의 가능성을 양자 파동함수처럼 그려보면 어떨까?
맨체스터 대학의 물리학자가 벌집 모양의 결정을 지닌 2차원 물질 연구를 시작하던 2000년대 초, 근처의 작은 도시 볼턴의 축구클럽에서는 2차원 축구 영상데이터 분석을 전술에 반영해 팀 역량의 비약적 변화를 얻어냈다. 그러자 이 혁신적 방법에 영감을 얻은 인근의 리버풀 FC는 케임브리지대학 물리학 박사 출신인 이언 그레이엄을 영입해 데이터분석팀을 본격적으로 조직했다. AI라는 용어조차 생소했던 시기였지만 물리학 천문학 통계학, 심지어 체스 전문가까지 채용한 이들은 축구 경기를 완전히 새로운 관점으로 해석한 모형을 만들었고, 마침내 리버풀 FC는 30년 만에 2019~2020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2차원 물질 연구에도 비슷한 시기인 2010년과 2016년에 노벨 물리학상이 수여되었다.
움직이고 변하는 축구 결정은 열역학도 닮았다. 조직적 강한 압박은 팀의 정렬성을 무너뜨리면서 유리나 고분자 같은 비정질 구조로 바꿀 수 있으며, 갑작스럽게 수비에서 공격으로 전환되는 뜨거운 순간은 얼음이 물이나 증기가 되듯 원자의 독립적 활동성이 증가하는 상전이와도 유사하다. 선수의 개별 특성까지 고려한다면 축구는 22개의 이종원자로 구성된 인공적 신물질이다. 따라서, 선수 교체와 새로운 선수 영입은 불순물을 주입해 전체 물성을 변화시키는 재료공학 기술과도 비슷하다. 실제 이언 그레이엄 박사는 대다수가 반대했던 무명 선수를 팀 전력의 불균형을 보충할 수 있는 최적의 인재로 예측한 후 놀라운 시너지를 일으키는 결과를 보여주며 자신의 축구 모형을 입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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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유럽의 많은 프로축구팀들이 데이터분석팀을 적극 활용하고 있으며 아마도 다음 월드컵에는 더욱 진화된 분석 모형과 AI에 기반한 고도의 전략이 등장할 것이다. 새롭게 구성될 한국 축구 대표팀도 이런 혁신적 과학기술을 적극 수용할 안목을 지녔으면 좋겠다.